중앙데일리

Tokto dispute was decided 300 years ago

Feb 27,2005


“It’s natural that the person who takes over an ownerless island can have it,” said the ruler of Japan’s Hoki region, today’s Tottori Prefecture. “Then can I take one of the deserted islands off the coast of Japan and start a dispute?” replied An Yong-bok. This exchange is from a scene in Kim Lae-ju’s novel “The Great Joseon Man An Yong-bok” in which the two men negotiate the ownership of Ulleung and Tokto islands.

Along with Ulleung, Tokto became a Silla tributary during the reign of King Jijeung, and was part of Goryeo territory under King Hyeonjong. But King Taejong of the Joseon Dynasty moved its population to the mainland in order to empty the islands. This became grounds for Japan’s insistence that, in claiming Tokto, it had occupied an ownerless island.

Mr. An was a hero who refuted Japan’s claim based on historical records, and obtained a letter from the Tokugawa shogunate acknowledging that the islands were Joseon’s. A monument to “General An’s” accomplishment has been erected in Do-dong on Ulleung island. But records show that Mr. An was not a general, but a servant.

Reportedly, Mr. An was captured in 1693 while harvesting abalone on Ulleung Island and taken to Japan. In the novel, Mr. An, furious that Japanese fishermen frequent the waters of Ulleung and Tokto, is taken to Japan when he brings people together to defend the islands. The incident is the first recorded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over the islands. The letter Mr. An secured from the shogunate was stolen by the ruler of Tsushima during Mr. An’s return to Korea. Three years later, Mr. An went back to Japan, pretending to be the tax officer of Ulleung and Tokto, a post that did not exist. He again obtained a letter from the shogunate ―the oldest official Japanese acknowledgement that Tokto is Korean. But upon returning, he was punished for posing as a government official.

According to a paper published last year by Seichu Naito, honorary professor at Shimane College, Japan has twice acknowledged that it did not own Tokto; once was in the letter obtained by Mr. An. Still, the Simane Prefecture and Japan’s ambassador to Korea both recently claimed Tokto as Japanese, under the name Takeshima. It is a shame that we have failed to defend Mr. An’s achievement of more than three centuries ago.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for the JoongAng Ilbo.


by Lee Se-jung

안용복

"주인 없는 섬을 먼저 차지한 쪽이 주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현재 돗토리현인 일본 호키령 영주) "그렇다면 내가 돌아가는 길에 일본의 해역에 흩어져 있는 무인도 하나를 취한 뒤 분쟁을 선언해도 되겠는가?"(안용복) 김래주씨가 최근 펴낸 소설 '대조선인 안용복'에서 안용복이 울릉도 및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일본 영주와 담판을 짓는 대목이다.

울릉도는 독도와 함께 지증왕 때 신라의 조공국이 됐고, 고려 현종 때 고려 영토에 포함됐다. 그러다 조선 태종 때 이곳 주민을 육지로 옮긴 공도(空島)정책이 시행되면서 빈 섬이 되었다. 일본이 지금도 주장하는 '무주지(주인 없는 땅) 선점'의 근거다.

안용복은 일본의 이런 주장을 역사 기록 등을 내세워 반박해 일본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각서(서계)를 받아낸 영웅이다. 그의 업적을 기려 울릉도 도동에 '안용복 장군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그는 장군이 아니었고, 기록에 따르면 사노(私奴) 출신이었다.

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에서 전복을 따다가 일본에 잡혀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상으로 한국과 일본이 울릉도.독도를 놓고 대립한 첫 사건이다. 안용복은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각서를 받아내지만 귀국길에 대마도주에게 이 문서를 강탈당한다. 3년 뒤 안용복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번에는 울릉도.독도 감세장(監稅將.조세담당 관리로 실제로는 없는 관명)으로 행세하며 막부의 서한을 재차 받아낸다.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일본 최초의 공문서다. 그러나 안용복은 귀국 후 관리를 사칭한 죄로 처벌받았다.

일본 시마네대의 나이토 세이추 명예교수가 지난해 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과거 두 차례 공식적으로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중 하나가 안용복 사건과 관련된 1695년의 문서다. 그런데도 일본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엊그제 주한 일본대사는 "독도는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명백히 일본 영토"라는 망언을 했다. 300여년 전 안용복 장군이 이뤄낸 업적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습이 부끄럽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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