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As fall the wealthy, so falls the state

June 13,2005


In Athens, the ancient cradle of democracy, the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was an important concern. The solution arrived at was that the rich would “contribute” to the public welfare. It was one of their civic duties. The rich ― 4 percent of the population, in the fourth century B.C. ― paid for public festivals, and for the maintenance of warships, of which there were a considerable number. The government built the ships, and paid for the crew, but maintenance and repair were the responsibility of wealthy citizens.

Another way Athens addressed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was by establishing a relief fund. Its original purpose was to subsidize theater admission for poor people. Later, a variety of relief funds were created for different purposes, and an increasing number of people depended upon them. As the government budget was directed toward relief funds, instead of being used for national defense or investment in facilities, the state’s financial situation began to decline. And as the democracy of Athens deteriorated into a “mobocracy,” the situation got even worse. The citizens often chose to use revenues for festivals instead of building battleships.

The public’s perception of the contributions from the rich gradually changed. Toward the end of the history of Athens, their donations became a means to exploit the rich, and the burden placed upon the wealthy grew. The famed rhetorician Isocrates lamented, “When I was young, it was not dangerous to be called rich, and people were proud of it. But today, people are doing their best to hide their wealth, because it is more dangerous to be rich than to break the law.”

Athens was unexpectedly defeated by Sparta, despite its unmatched naval power, superior numbers and greater economic might. The defeat is attributed to the plague and Persia’s intervention, among other factors. But there is a more convincing theory. In “The Story of Tax,” author Jeon Tae-yeong argues that the more fundamental cause for the fall of Athens was the redistribution of wealth. The lesson of Athens is that a society in which one cannot take pride in being rich is bound to collapse.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for the JoongAng Ilbo.


by Lee Se-jung

아테네의 몰락

민주주의를 꽃피운 고대 아테네의 고민 중 하나는 빈부 격차였다. 아테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부자의 기부(寄附)'였다. 아테네에는 '부유한 시민의 공적인 의무'라는 게 있었다. 부자는 공공복지를 위해 기부금을 내야 했다. 특히 축제에 들어가는 비용은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아테네의 전함(戰艦)을 관리하는 비용도 부자들의 몫이었다. 강력한 해군력을 자랑하던 아테네의 전함은 적지 않은 숫자였다. 전함을 만드는 비용, 승무원의 식량과 급여만 국가가 부담하고 장비 제공, 수선 등 나머지 관리 비용은 부자들이 책임졌다. 기원전 4세기께 기부금을 내는 부자는 아테네 전체 인구의 4%였다고 한다.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는 구제기금이었다. 구제기금의 당초 목적은 가난한 사람의 극장 입장료를 보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용되지 않고 남은 돈은 가난한 시민에게 나눠졌다. 이후 이런저런 목적으로 다양한 구제기금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부 재정이 국가 방위나 시설 투자보다는 구제기금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재정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로 변질하면서 사태는 더 나빠졌다. 시민들은 정부 예산을 전함 건조보다 축제에 쓰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부자의 기부'에 대한 시각도 점차 바뀌었다. 아테네 후기로 갈수록 기부는 부자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부자들의 부담은 점점 커졌다. 유명한 변론가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는 이런 상황을 개탄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부자라고 불리는 것이 위험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람들이 재산을 숨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법률을 위반하는 것보다 부자라고 불리는 게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고 인구나 경제력에서 앞섰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한 것은 의외였다. 페스트 창궐, 동맹국 이탈과 페르시아 개입 등이 아테네 패전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테네 몰락의 근본원인은 분배주의라는 지적('세금 이야기' 전태영 지음)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부자임을 자랑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는 쇠망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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