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llingness to compro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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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illingness to compromise

Earlier this week, the Korea-Japan Elders Council convened in Tokyo. Senior leaders of Korea and Japan sought resolutions to the deadlocked relations between the countries. While there are no clear solutions, the meeting reflected the desperation of the leaders. Just as in Korea, politicians and officials in Japan cannot easily mention “Korea” because of Abe’s hard-line attitude.

It is noteworthy that the Abe government is increasingly becoming confrontational and stubborn. It has tipped over from “We cannot trust Korea” to “We won’t trust Korea.” The shift of willingness brings tremendous differences.

However, the situation should not be viewed from the angle of bilateral relations. We need to calmly review why the United States is allowing Abe to speak to Congress during his visit there next month and why 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emphasized the tolerance of France as much as Germany’s apologetic attitude. We should not be upset or choose an angle as we please. What Korea wants to see and what Japan the United State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ee are different. The United State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trictly pursue their own interests, and it is too naive, and even foolish, to think they would support Korea as a victim forever.

At this juncture, a solution emerging among Korea and Japan watchers is an envoy plenipotentiary. Certain names are mentioned, such as Blue House Chief of Staff Lee Byung-gi for Korea and Cabinet Minister Yoshihide Suga for Japan. Japan considers Foreign Minister Yun Byung-se a hard-liner, and Korea thinks Japanese foreign minister Fumio Kishida cannot convince the prime minister of anything.

Lee is known for his prudence, always ending a report with “Please destroy upon reading” even when Park was the Grand National Party head. In order to prevent any modification or fabrication, he writes report in his own handwriting. Nicknamed “Buddha,” Suga is selective about what he says. Both come from humble backgrounds. Lee used to sell books to pay for his room near Seoul National University. Suga came from a small town in Akita Prefecture and worked at a restaurant and factory while going to college. They share a sentimental bond, and when Lee was an ambassador to Japan in 2012, the lifeline remained open when Seoul and Tokyo were growling at each other.

In fact, this may be the last remaining line to recovering Korea-Japan relations in this administration. It is up to President Park and Prime Minister Abe to decide whether to use this chance or discard it. But it is better to bend than snap.

*The author is a Tokyo bureau chief of the JoongAng Ilbo. JoongAng Ilbo, March 28, Page 30


이번 주초 도쿄에선 '한·일 원로회의'가 열렸다. 양국의 원로급 지도자들이 모여 좀처럼 풀리지 않는 한·일 관계 해법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뾰족한 해법이야 있겠냐만 오죽하면 원로들까지 나섰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일본의 경우 아베 신조 총리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한국'이란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아베 정권의 태도가 점차 한국에 대해 "할 테면 해보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못 믿겠다"에서 올들어 "한국을 안 믿겠다"는 쪽으로 확연히 변했다. 글자 하나 차이지만 엄청난 차이다.
하지만 이 국면을 단지 한·일 양국 관계의 앵글로만 바라볼 게 아닌 듯 하다. 미국이 다음달 방미하는 아베의 미 의회연설을 허용한 이유는 뭔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의 역사사죄 못지않게 주변국(프랑스)의 관용적 태도를 강조한(한국 언론은 거의 무시했지만) 이유가 뭔지 흥분하지 말고, 우리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할 때다. 한국이 '보려는' 일본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보는' 일본은 다르다. 철저히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가 언제까지 '피해국'을 강조하는 한국을 지지할 것으로 본다면 순진하거나 혹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디테일에 집착하며 이웃나라와 티격태격하는 일본을 '리더'로 볼 국가는 없다. 한·일 모두 '별종(別種)' 신세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한·일 워처들 사이에 부상하는 해결 카드가 바로 '전권 특사'다. 특정인의 이름도 거론된다. 한국 측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일본 측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대일 강경파라 말이 안 통하고(물론 일본의 주장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 외상은 총리 관저에 '말빨'이 안 먹힌다고 본다.
이 실장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때부터 보고서류에 반드시 '독후(讀後)파기'란 글을 붙였을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다. 위·변조를 우려해 보고서도 꼭 자필로 썼을 정도다. 스가 장관도 '부처님'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입이 무겁다. 공통점은 또 있다. 옛 서울대 공대 인근 중계동의 쪽방에 살면서 권리금을 구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문학전집을 팔러 다녔던(한 질에 10%의 수고비가 떨어졌다 한다) 이 실장이나, 아키타현 깡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해 카레라이스 가게, 골판지 공장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했던 스가 장관이나 심정적으로 통하는 고리가 있다. 그래서 2012년 이 실장이 주일대사로 부임했을 때 양국이 으르렁거리는 상황에서도 일종의 '라이프라인(생명선)'은 살아있었다.
이는 사실상 현 정권 내 한·일 관계 복원의 마지막 끈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기회를 살릴 지 놔둘지는 박 대통령과 아베가 결정할 몫이다. 하지만 부러지는 것보다 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원로들의 뜻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김현기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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