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onclad evidence of past wrongs

Home > >

print dictionary print

Ironclad evidence of past wrongs

테스트

It takes three hours on a high-speed train to get from Beijing to Taiyuan city in Shanxi province. Yu County is two hours away from Taiyuan through mountainous paths. Yu County has not changed much since the late Qing dynasty. But it harbors a dark past: Japanese forces invaded this remote area and captured young women during the war.

The outside world would not have learned of the ordeal that this peaceful mountain village had gone through if it were not for the efforts of 62-year-old Zhang Shuangbing. The retired elementary school teacher lived in this village all his life, and some 20 years ago, he learned that former comfort women victims were living there.

The residents of the mountain village still had the traditions and mindset of a feudal society.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these victims were persecuted as Japanese collaborators. Zhang traveled around Shanxi and nearby Henan province and found 127 victims of Japanese wartime sexual slavery, collecting their testimonies. Recently, he attended a forum held at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and gave a presentation on the status of Chinese comfort women.

Zhang Shentu, 89, is one of the victims Zhang Shuangbing found. Recently, I accompanied Zhang Shuangbing and visited Zhang Shentu. The old lady had small feet, an indication that her feet had been traditionally bound.

It was the binding of her feet that led to her victimization. One day in 1942, Japanese soldiers stormed into her house, and she dashed out the door. But it was impossible to run fast with bound feet. The 16-year-old newly married bride was forced to serve as a comfort woman for the Japanese military.

She struggled to speak due to a respiratory illness, but she told me that she could forgive everything if Japan apologized.

During the meeting with Zhang, a Chinese saying, "the ironclad details pile up a mountain high,?did not leave my mind. The phrase is used by everyone, from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to average Chinese people, when criticizing Japan's history of whitewashing.

Chinese people use this phrase to refute Japan when it fabricates the scope of the Nanking Massacre or denies the forcible mobilization of the comfort women and describes them as prostitutes. Zhang Shentu is living ironclad evidence that the Japanese leaders?denial of wartime savagery is simply wrong.

But there is not much time. Among the 127 comfort women victims that Zhang has found, only 11 are alive today. Japanese leaders must atone and repent before it is too late.

*The author is the Beijing correspondent for the JoongAng Ilbo.

BY YEH YOUNG-JUNE

JoongAng Ilbo, Aug. 15, Page 30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 거리인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 이곳에서 다시 2시간 동안 험난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위(盂)현은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오지 중의 오지다. 한 촌로에 따르면 주민들의 생활방식은 청나라 말기 때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더 놀라운 건 이 오지에까지 일본군이 쳐들어와 젊은 여인들을 잡아갔다는 사실이다.
 이 평화로운 산골 마을의 수난은 장솽빙(張雙兵·62)의 노력이 없었다면 바깥 세계로 잘 알려지지 않을 뻔했다. 이곳에서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다 퇴직한 그는 20여 년 전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봉건사회의 인습과 사고방식이 산골 주민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던 까닭이다. 심지어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일본군 협력자란 명목으로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는 산시성과 인근 허난(河南)성 일대의 산골 마을을 발로 누비며 127명의 피해자를 찾아내 증언을 녹취했다. 그는 최근 한국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해 중국의 위안부 피해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올해 89세의 장셴투(張先兎)도 장솽빙이 찾아낸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다. 얼마 전 장솽빙과 함께 할머니를 직접 찾아간 적이 있다. 체구가 작기도 하지만 발이 유난히 작은 게 눈에 들어왔다. 그가 어릴 때까지 마을에 남아 있던 전족(纏足) 풍습 때문이었다. 그 전족이 장 할머니에게 천추의 한을 남겼다. 1942년 어느 날 일본군이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그는 단걸음에 문밖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전족한 발로 빨리 달리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열여섯 새댁은 그 길로 악몽 같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호흡기 계통의 질병을 앓아 말 한마디 하는 게 힘든 상황이었지만 할머니는 이방인 기자에게 “일본이 사죄하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할머니를 만나는 내내 ‘철증여산(鐵證如山)’이란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쇳덩이처럼 확고부동한 증거가 산더미처럼 많이 쌓여 있다는 뜻의 이 성어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에서부터 평범한 일반인까지 중국인들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일본의 공식 입장과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난징(南京)대학살의 피해규모를 얘기하거나 강제동원은 없었다며 마치 위안부 피해자를 성매매 여성으로 왜곡하는 데 대한 반론과 함께 등장하는 말이다. 장셴투 할머니야말로 일제의 만행을 부정하는 일본 지도자의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 주는 살아 있는 ‘철증’이다. 문제는 장 할머니처럼 삶 그 자체가 증거인 분들의 여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직 교사 장솽빙이 찾아낸 위안부 피해자 127명 가운데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11명밖에 없다. 일본 지도자들이 속죄하고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What’s Popula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