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explores the childhood of first Korean card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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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explores the childhood of first Korean cardinal

 
’Beyond That Mountain“ is filled with picturesque rural settings of Korea. [LITTLE BIG PICTURES]

’Beyond That Mountain“ is filled with picturesque rural settings of Korea. [LITTLE BIG PICTURES]

An interview with the investor of ‘Beyond That Mountain’

 
While many films have tackled the story of Cardinal Stephen Kim Sou-hwan, only one has been produced with the financial backing of a Buddhist.
 
“Beyond That Mountain,” released Thursday, has already hit No. 1 in the box office. The film is based on Jung Chae-bong’s 2009 book, a collection of weekly newspaper articles about Kim’s childhood beginning in 1993.
 
In 2019, two Catholic filmmakers approached Nam Sang-won, a Buddhist who is the head of Korean architecture firm ID & Planning Group.  
 
“Baek Jang-hyun is an old friend of mine,” Nam recalled in an April 21 interview with the JoongAng Ilbo, an affiliate of the Korea JoongAng Daily. “He called one day to ask if I’d be interested in investing in a film. I told him flatly, ‘No.’ I wasn’t into films.”
 
But at Baek’s insistence, Nam relented and agreed to meet with him and two directors.
 
“They gave me a book, ‘Beyond That Mountain,’ which tells a story about the cardinal’s childhood. They said they wanted to make a movie out of it in time for the 11th anniversary of the cardinal’s death.”
 
Nam still wasn’t won over. But that changed when he cracked open the book, he said.
 
“Once I read the book, I knew I’d regret it if I didn’t help out,” he said. “It wasn’t a matter of how much profit we’d make from the film. I wanted it to be on screen to tell the story.”
 
Nam Sang-won, a Buddhist architect who funded the film. [KWON HYUK-JAE]

Nam Sang-won, a Buddhist architect who funded the film. [KWON HYUK-JAE]

 
The film takes viewers back to the 1920s, to the childhood memories of Cardinal Stephen Kim Sou-hwan (1922-2009). Taking pla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1910-1945), the story sheds light on what made Kim who he was, and how in 1969, at the age of 47, he became the youngest person to ever be appointed as a cardinal. He was also the first Korean to hold the office.
 
“Many films have been made about the cardinal, but we don’t know much about his childhood,” Nam said.  
 
Kim was the eighth and last child in the family. His father passed away when Kim was still young.
 
Kim’s mother wanted him and his older brother, Dong-han, to become priests. When she shares this with Kim in the movie, Kim playfully responds, “No way, I will become a ginseng seller.”
 
But his mother’s wish ultimately came true.
 
“Our heart is like a field, and we allow different seeds to take root in it,” Kim’s mother tells him in the movie. “What is the seed that has taken root in you, Sou-hwan?”
 
Kim ponders this question following his father’s death.
A scene from the movie ’Beyond That Mountain,“ which tells the story of Cardinal Stephen Kim Sou-hwan’s childhood. [LITTLE BIG PICTURES]

A scene from the movie ’Beyond That Mountain,“ which tells the story of Cardinal Stephen Kim Sou-hwan’s childhood. [LITTLE BIG PICTURES]

 
Unable to find a suitable filming location in modern-day Daegu, where Kim grew up, the movie was filmed in rural towns in Nonsan, South Chungcheong, where Kim’s father grew up.
 
“I thought it was a weird coincidence when they told me that they decided to film in Nonsan, because that’s where I grew up as well,” Nam said.  
 
Nam said the book inspired him to learn more about the cardinal. He began searching for information on Kim’s grandfather, Kim Ik-hyun, a Catholic who is said to have been martyred. Kim’s own search for his grandfather never bore fruit.  
 
“We asked around in Nonsan if they had any ideas about Kim’s grandfather, his roots and his family,” Nam said. “I asked a good friend of mine in Nonsan, and it turned out he had some clues. He told me that he had heard from townspeople that Kim Ik-hyun was a descendant of a politician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named Kim Jang-saeng.”
 
Nam paid a visit to a descendent of Kim Jang-saeng and found the name Kim Ik-hyun in the family records.
 
Nam also took an active role in filmmaking.
 
“I know it’s not left in the records or anything, but I had guessed that the reason why Kim Ik-hyun did not deny his faith and was martyred was perhaps because he had at least once been influenced by the teachings of Andrew Kim Tae-gon,” Nam said.  
 
Andrew Kim Tae-gon (1821-1846) was the first Korean-born Catholic priest. At Nam’s request, the crew created a scene in which Kim Ik-hyun listens to a sermon by Andrew Kim Tae-gon.
Cardinal Kim. [JOONGANG ILBO]

Cardinal Kim. [JOONGANG ILBO]

 
The story would not have been told at all without Nam’s investment, which totaled some 4 billion won ($3.3 million). The filmmakers had spent seven years searching for funding for the film.
 
“There are other strange coincidences, like the date of the release,” Nam said. “April 30 is the Day of Buddha’s Coming. It wasn’t originally that date, but it got pushed back from February due to the coronavirus outbreak.”
 
The last scene of the movie, in which Kim is serving a mass in a cave, was filmed near the Buddhist temple Seonunsa in Gochang County, North Jeolla.
 
“The book also recounts a moment that Kim stood before the Buddha in the Gyeongju Seokguram Grotto for nearly an hour,” Nam said. “He is believed to have said at the time that there is something in the spirit of the man who carved the Buddha structure that is unmistakably Korean, just as Kim is.”
 
BY NA WON-JEONG [ [email protected]]
 
 
가난한 꼬마 김수환 추기경, 영화로 만든 이는 불교신자
 
아이는 가난한 옹기장수집 8남매 중 늦둥이 막내였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 대신 행상 다니던 어머니에게 세상에 궁금한 것들을 민들레 홀씨처럼 뿜어냈다. 하도 순해서 ‘순한’이라 불렸다. 가톨릭 사제가 되라는 어머니 청만큼은 “인삼 장수가 되고 싶다”며 거절했다. 고생만 한 어머니를 넉넉히 모시고 싶어서였다. 1969년 47세에 세계 최연소, 한국 최초 추기경에 오른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 이야기다.
 
‘거룩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 ‘저 산 너머’(감독 최종태)가 오는 30일 부처님 오신 날 개봉한다. 동화 『오세암』의 작가 고 정채봉이 1993년 김 추기경과 나눈 대화로 엮어낸 동명 연재물이 토대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투자자는 불교 신자다. 건축가 남상원(63)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이 제작부터 배급까지 40억여 원을 투자했다.
 
“김 추기경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잘 몰랐잖아요. 저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이 영화가 어렵게 사는 이들의 희망이 될 것 같았습니다.”
 
21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남 회장은 김 추기경을 “암울한 시기, 민주화에 앞장선 분”이라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건축일을 해온 그가 영화를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월 말 친한 사이인 가톨릭 신자 백장현 교수(한신대)가 갑자기 전화로 영화 투자를 제안했다. 그는 “영화는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했지만, 그날 저녁 감독·제작자와 함께 백 교수가 찾아왔다.
 
“책(원작)을 주면서 이걸로 영화를 만들어 김 추기경 11주기에 개봉하면 좋겠다더군요.”
 
다음날 별생각 없이 펴든 책은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이 뛰었다. “이익을 떠나, 이 영화를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영화는 1928년 경북 군위 한 시골의 7세 소년 수환(배우 이경훈)을 비춘다. 정겹고도 유쾌한 장면이다. 그러나 시대와 가난의 아픔은 어린 수환을 피해가지 않았다. 오래 병을 앓던 아버지(안내상)는 생전 직접 꼬아둔 짚 멍석에 싸인 채 지게꾼 등에 얹혀 무덤길로 향했다. 일제 소학교 아이들의 돌팔매는 수환의 이마에 흉터를 남겼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들을 앉혀두고 “마음밭에 무엇이 심겨 있느냐”“천주님 자식을 맡아 기르는 게 부모”라 했다. 3살 터울 형 동한(정상현)이 먼저 사제가 되길 택했다. 수환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빈 옹기 속에서 자기 안의 씨앗을 고민한다.
 
260대 1 경쟁을 뚫고 발탁된 주연 이경훈 등 배우들의 차분한 연기가 두루 가슴에 스민다. 연출은 영화 ‘플라이 대디’(2006)로 데뷔해 ‘해로’(2012)로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받은 최종태 감독이 맡았다.
 
남 회장은 영화를 찍을수록 신기한 인연을 느꼈단다. 주 촬영 세트는 그의 고향 논산에 마련됐다. 김 추기경이 나고 자란 대구, 경북 군위 등에 마땅한 세트 부지를 못 찾던 감독과 제작자가 논산의 질박한 시골 풍광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다.
 
실제 광산김씨인 김 추기경 아버지의 고향도 논산이었다. 생전 김 추기경은 천주교 병인박해로 순교한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남 회장은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이 부분도 밝혀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추기경 할아버지 김익현이 조선시대 논산 출신 정치가 사계 김장생 선생의 후손이었다”고 했다. 광산 김씨 증손을 찾아가 고문서와 족보를 샅샅이 살펴 알아낸 것이다.
 
자주 현장을 찾아가 아역 배우들에게 인심 후한 ‘할아버지’라 불렸다는 그다. 장기 두는 사람으로 카메오 출연도 했다. “쓸데없는 간섭하지 않고 힘들 때 같이 고민하고 격려하는 게 즐거웠다”고 한다. 딱 하나, 영화에 김 추기경의 할아버지 김익현이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의 강론을 듣는 장면은 그가 제작진을 설득해 넣었다. 원래 책엔 없는 허구다.
 
남 회장은 “김익현이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순교한 데는 김대건 신부의 강론을 들었던 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김대건 신부가 논산 강경에서 미사를 보던 무렵 17세이던 김익현의 집안도 논산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유추했다”면서 “영화에 천주교 역사가 나오는 게 의미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마지막 촬영은 김대건 신부의 동굴 미사 장면. 고창 선운사 말사 도솔암 동굴에서 찍었다. 남 회장은 원작 책에서 김 추기경의 구술을 정리한 한 자락을 떠올렸다. 로마 바티칸의 그 어떤 작품 앞에서도 5분 이상 머문 적이 없던 김 추기경이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앞에선 “처음 보는 데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정든 모습”이라 한 시간이나 머물렀다는 대목이다.
 
남 회장은 “저는 종교라는 것에, 큰 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편하면 좋은 것이다. 신은 하나니까”라며 빙그레 웃었다. “시골서 올라와서 출세한다는 게 어렵다. 힘들 때 절에 가면 마음이 안정돼 불자가 됐지만, 사실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다녔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 배달하며 고학했고 돈 벌려고 건설 일을 택했지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산 안창호를 읽던 문학 소년이었다는 그다.
 
이번 영화 개봉일에 대해선 “2월 선종 11주기 개봉은 무리여서 미루던 중에 코로나19 사태가 왔다. 위기가 기회다, 답답하고 힘든 시기에 우리 영화가 딱 맞다 싶었다”면서 “29일 개봉하려다가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한 달 뒤로 미뤄지는 것을 보고 부처님까지도 우리한테 자리를 내주시는데, 이날이 좋겠다 싶어 30일로 정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이번 영화로 인연을 맺을 관객들이 “봄이 오면 산 구석구석에 들꽃이 피듯 세상 어느 곳에나 보이지 않아도 찾으면 늘 희망이 있다는 걸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년 표류 김수환 추기경 영화에 40억 쾌척한 불교신자, 누구
 
아이는 가난한 옹기장수집 8남매 중 늦둥이 막내였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 대신 행상 다니던 어머니에게 세상에 궁금한 것들을 민들레 홀씨처럼 뿜어냈다. 하도 순해서 ‘순한’이라 불렸다. 가톨릭 사제가 되라는 어머니 청만큼은 “인삼장수가 되고 싶다”며 거절했다. 고생만 하고 사신 어머니를 넉넉히 모시고 싶어서였다. 훗날 1969년 마흔일곱 나이에 세계 최연소, 한국 최초의 추기경에 오른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 이야기다.
 
‘거룩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 ‘저 산 너머’(감독 최종태)가 오는 30일 부처님 오신 날 개봉한다. 동화 『오세암』의 작가 고 정채봉이 1993년 김 추기경과 나눈 대화로 엮어낸 동명 연재물이 토대다.
불교신자가 만든 가톨릭 영화
 
흥미롭게도 이번 영화의 투자자는 불교신자다. 건축가 남상원(63)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이 제작부터 배급까지 총 40억여 원을 투자했다.  
 
“우리시대에 훌륭한 종교인으로 한경직 목사, 성철스님,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을 꼽습니다. 그런 분들이 사라진지 10년이 되면서, 국민적 어른에 목마르게 됐죠. 김 추기경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잘 몰랐잖아요. 저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이 영화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희망이 될 것 같았습니다.”    
 
21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남 회장은 김 추기경에 대해 “하늘이 보낸 분”이라 돌이켰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물결, 노동운동, 가난한 자들의 방패막이가 돼준 것을 두고서다. “작년엔 바티칸 교황청이 세계 선교모범 14인에 선정했다. 예수탄생 이후 2000년 역사에서. 얼마나 대단하냐” 했다. 그렇다 해도 영화를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인연 때문에”라고 그는 말했다.
 
30년 가까이 건축일을 해온 그가 영화를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월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백장현(한신대) 교수에게 갑자기 영화 투자를 제안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영화는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했지만, 그날 저녁 감독ㆍ제작자와 함께 백 교수가 찾아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셋과 불교신자의 만남이었다.  
 
'시대의 어른' 만든 어린시절
 
“제가 금전적 여유가 있고 뜻이 맞을 거라 생각했겠지요. 책(원작)을 주면서 이걸로 영화를 만들어 김 추기경 11주기에 개봉하면 좋겠다더군요.”
 
건성으로 듣고 책을 받았다. 마침 일요일이던 다음날 펴든 책은 책장을 넘길수록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이익을 떠나 이 영화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영화는 1928년 경북 군위 시골동네에 살던 일곱 살 소년 수환(이경훈)을 비춘다. 그 성장배경을 보노라면 ‘시대의 어른’이 그냥 나오지 않았음이 가슴깊이 새겨진다. 싱그러운 신록 속에 설레는 첫사랑, 동갑내기 조카와 티격대는 등 아이다운 장면들은 정겹고 유쾌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가난의 아픔은 어린 수환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일본 소학교 아이들의 돌팔매는 일생 수환의 이마에 흉터를 남겼다.  
오래 앓던 아버지(안내상)의 장례는 가련할만치 소박했다. 높다란 상여도 없이, 생전 직접 꼬아둔 짚 멍석에 감싸인 아버지의 여윈 몸을 지게꾼이 짊어졌고, 흰 무명옷을 입은 가난한 이웃들이 뒤따랐다. 길가에 들꽃이 화려하게 보일 정도였다.  
 
7살 수환의 마음밭에 심은 씨앗
 
어머니는 어린 아들들을 앉혀두고 “마음밭에 무엇이 심어져 있느냐”“천주님 자식을 맡아 기르는 게 부모”라 했다. 3살 터울 형 동한(정상현)이 먼저 사제가 되길 택했다. 수환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빈 옹기 속에서 자기 안의 씨앗을 고민한다.
 
260대 1 경쟁을 뚫고 발탁된 주연 이경훈과 배우들의 차분한 연기가 두루 가슴에 스민다. 연출은 영화 ‘해로’(2012)로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최종태 감독이 맡았다.  
 
‘패스트트랙’ ‘탑다운’ 노하우 살려
남 회장은 투자만 한 게 아니다. 그는 행동파다. 이미 7년간 표류했던 영화를 1년 안에 완성해 11주기에 선보이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판단했다. “‘패스트트랙’ ‘탑다운’ 했죠. 건설용어인데 패스트트랙은 설계하면서 공사를 거의 동시에 뒤따라 하는 방식이고 탑다운은 최고 지휘에 따르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 의사결정이 빠르니까요.”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하면 할수록 인연이 느껴졌다. 주된 촬영 세트는 우여곡절 끝에 그의 고향 논산에 마련됐다. 김 추기경이 나고 자란 대구, 경북 군위 등에 마땅한 세트 부지를 못 찾던 감독과 제작자가 논산의 질박한 시골풍광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다.  
 
추기경의 순교한 선조 가문 알고보니  
실제 광산김씨인 김 추기경 아버지의 고향도 논산이었다. 생전 김 추기경은 천주교 병인박해로 순교한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남 회장은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이 부분도 밝혀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 할아버지가 굉장히 부잣집 명문가였어요. 형님은 판서를 하고 그분은 참판까지 하셨죠. 논산에서 면장 하는 고향 동생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자기 동네 이야기라는 거예요.”  
 
그는 “김 추기경 할아버지 김익현이 조선시대 논산 출신 정치가 사계 김장생 선생의 후손”이라고 했다. 광산 김씨 종손을 찾아가 고문서와 족보를 샅샅이 살펴 알아낸 것이다.
 
추기경이 석굴암에 한 시간 머문 까닭
 
자주 현장을 찾아가 아역 배우들에게 인심 후한 ‘할아버지’라 불렸다는 그다. 장기 두는 사람으로 카메오 출연도 했다. “건설업은 이 정도 돈이 진짜 깨져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 할 때 사업을 한다. 목매달면 쓸데없이 간섭하게 된다”면서 “힘들 때 같이 고민하고 작은 격려하는 게 즐거웠다” 했다. 딱 하나, 간곡히 고집해 넣은 장면도 있다. 영화에 김 추기경의 할아버지 김익현이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의 강론을 듣는 대목이다. 원래 책엔 없는 허구의 내용이다.  
 
남 회장은 “김익현이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순교한 데는 김대건 신부의 강론을 들었던 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생각했다”면서 “김대건 신부가 논산 강경에서 미사를 보던 무렵 17세이던 김익현의 집안도 논산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유추했다. 영화에 천주교 역사가 나오는 게 의미 있을 것 같아 감독과 제작자를 13번 회의 끝에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었던 이 김대건 신부의 동굴 미사 장면은 절에서 찍었다. 고창 선운사 말사 도솔암 동굴이다. “동굴을 찾다 보니 거기가 마땅한 장소였다. 스님들이 허락해주셨다”며 남 회장은 원작 책에서 김 추기경의 구술을 정리한 한 자락을 떠올렸다. 로마 바티칸의 그 어떤 작품 앞에서도 5분 이상 머문 적이 없던 김 추기경이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앞에선 한 시간이나 머물렀다는 대목이다. “처음 보는 데도 석굴암 부처님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정든 모습”이었다며 “아, 저 부처님을 조성한 석공과 나는 분명 한 민족이구나”라고 김 추기경은 털어놨다.
 
"내가 편하면 좋은 것, 신은 하나죠"  
 
남 회장은 “저는 종교라는 데 큰 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편하면 좋은 것이다. 신은 하나니까”라고 했다. “시골서 올라와서 출세한다는 게 어렵다. 힘들 때 절에 가면 마음이 안정돼 불자가 됐지만, 사실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다녔다. 목사가 된 친구가 이번에 제가 불자라고 하니까 놀라더라”고 빙그레 웃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 배달하며 고학했고 돈 벌려고 건설 일을 택했지만 어릴 적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산 안창호를 읽던 문학소년이었다는 그다. 지난해엔 고향 선배 소설가 김홍신(『인간시장』)의 문학관을 논산에 설립했다. 설립 비용 72억원을 조건 없이 사비로 기부했다. 백제 역사에 대해 쓰려 한다는 김 작가의 얘기에 백제의 후예 논산과 그 선비정신을 바로 알릴 기회란 생각에서다. 이번 영화를 논산에서 찍게 되며 문학관은 촬영본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회사업 꿈…고향 문학관에 72억 쾌척
 
“60이 넘어 여건이 되면 사회사업 하겠다는 꿈은 늘 말해왔죠.”  
 
지금 그런 꿈을 실현하며 행복하다는 얘기였다. “문학관도 처음엔 30억 기부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욕심이, 나중에 후회 안 하려면 최고 좋은 걸 지향하게 되잖아요.” 실패도 많이 했지만 그럴수록 원칙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지킬 땐 어렵지만 시간을 지나보면 가장 훌륭한 방법이었어요. 집 장사 잘못해서 부실공사 많잖아요. 그 욕 듣고 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하겠어요.”
이번 영화 개봉일에 대해선 “2월 선종 11주기 개봉은 무리여서 미루던 중에 코로나19 사태가 왔다. 위기가 기회다, 답답하고 힘든 시기에 우리 영화가 딱 맞다 싶었다”면서 “29일 개봉하려다가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한 달 뒤로 미뤄지는 것을 보고 부처님까지도 우리한테 자리를 내주시는데 이날이 좋겠다 싶어 30일로 정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이번 영화로 인연을 맺을 관객들이 “봄이 오면 산 구석구석에 들꽃이 피듯 세상 어느 곳에나 보이지 않아도 찾으면 늘 희망이 있다는 걸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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