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ding support to Myanmar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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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ding support to Myanmar (KOR)

The author is a nation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Round balloons of various colors were surrounding a ball of fire. Hundreds of needles from the ground had sharp edges as if they were fighting the beings of the sky. The photo of Bagan overwhelmed me with the sunset, hot air balloons, thousands of Buddhas and 1,000 pagodas.
I was determined to visit Myanmar and see it for myself, but I had to give up. The country that houses the ancient site of Bagan was difficult to visit until the late 2000s. Suffering from a military dictatorship, there were many authoritarian factors hindering travel. I researched ways to fly there, which was practically the only way, but the expensive fare from a lack of demand made me give up.
Until I saw the magnificent picture of Bagan, Myanmar was not a country I was interested in. The only image defining the country was the Aung San terror attack on South Korean government officials in 1983, which planted hatred and fear over North Korea when I was young. To me, “Burma” and “Rangoon” were more familiar names than Myanmar and Yangon. Later, I learned that Myanmar was a big country six times larger than South Korea and rich in natural resources. It is also a country with great potential, so young that its average age is under 30.
As time went by, a democratic government, albeit immature, was established in Myanmar. Land borders opened and flights were added, but I didn’t have a chance to visit. In the meantime, my admiration for Bagan withered.
A coup occurred there. Millions of people risking their lives and protesting on the streets reflected a serious reality unlike the fantastic scenery of Bagan. Democracy is still something they have to exchange with blood. I was reminded of Korean decades ago.
The people of Myanmar are asking countries around the world for help. While we cannot provide all the solutions, I hope each of us can send at least a bottle of water to relieve them. I send my support with my writing as I pray to see the sunset in Bagan after Myanmar defeats the coup and wins democracy.
박진석 사회에디터
삼라만상에 붉은 물을 들이며 침잠하는 불덩어리를, 형형색색의 원형 풍선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었다. 지표면을 뚫고 솟아오른 수백개의 바늘은 천공 속 존재들에 대항이라도 하듯 벼린 날을 곧추세웠다. 해넘이와 열기구, 그리고 천불천탑(千佛千塔)이 그려낸 불국토(佛國土) 바간의 풍경은 사진 속 이미지에 불과했지만 보는 이의 넋을 앗아갔다.  
실물을 눈에 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방법을 알아봤지만 이내 포기해야 했다. 고대 도시 바간을 품고 있는 나라 미얀마는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발을 내딛기 어려운 곳이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신음하던 그 나라에는 외국인의 통행을 방해하는 권위적 요소들이 넘쳐났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거의 유일한 진출로였던 하늘길을 노려봤지만, 공급 부족에 따른 거액의 항공료를 받아들고는 결국 손을 들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얀마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북괴’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을 심어줬던 ‘아웅산 테러’가 그 나라를 규정하는 이미지의 전부였다. ‘버마’와 ‘랭군’에 익숙해 있었던 기자에게는 ‘미얀마’와 ‘양곤’이라는 단어 역시 낯선 존재들이었다. 미얀마가 남한의 6배에 달하는 대국이며 자원 부국인 데다가 국민 평균연령이 30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젊은 나라, 그래서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뒷날의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얀마에는 어중간한 형태나마 민주 정부가 들어섰고, 육로 국경의 개방과 항공편의 증편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기자는 그 땅을 밟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바간에 대한 동경의 강도도 시나브로 약해져 갔다.  
그곳에서 쿠데타가 발발했다. 목숨을 내걸고 거리를 메운 수백만 인파의 모습은 환상에 가까웠던 바간의 풍경과 달리 생생하고도 무거운 현실에 터 잡고 있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여전히 피와 맞바꿔야 하는 대상이다. 거기에 수십 년 전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미얀마인들이 세계 각국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의 타는 목마름을 해갈해 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목을 축일 수 있는 물 한 방울씩은 보내줬으면 좋겠다. 쿠데타를 무산시키고 민주화를 쟁취한 미얀마 땅에서 바간의 일몰을 볼 수 있길 기원하면서 보잘것없는 글줄로나마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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