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resident unforgiven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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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resident unforgiven (KOR)

 Former President Chun Doo Hwan passed away Tuesday, one month after his Military Academy classmate Rho Tae-woo, who succeeded him as president. With the passing of these two leaders, our memories of generals-turned-presidents also will fade away.

The legacy of Chun remains controversial 33 years after he stepped down in February 1988. His private funeral testifies to the convolution of his seven-and-half-year presidency. He not only took power through a coup after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 Chung Hee in October 1979, but also turned Gwangju into a bloodbath in May 1980. And yet, he was reelected president with fanfare through the introduction of an indirect presidential election system the following year.

Aside from the issue of presidential legitimacy, the controversy over his role in the Gwangju massacre will follow Chun into the grave. He received punishment on several occasions, including life imprisonment on charges of rebellion, homicide and bribery, on top of his self-imposed seclusion for 769 days at a remote Buddhist temple.

Chun was fundamentally an authoritarian leader as evidenced by his unfettered repression of democracy and labor movements, which led to the tragic deaths in 1987 of two college students — one from police torture and the other from a tear gas bomb — which led to a massive wave of democracy demands by white-collar workers. Yet Chun chose a path different from other generals-turned-leaders of Third World countries. At the height of the 1987 crusade for democracy, he accepted the direct presidential election system. Former Prime Minister Lee Hong-koo called it a “successful — and very rare — voluntary retreat of a military regime from power.”

His economic team tackled three challenges — growth, inflation and the balance of payments — at the same time by liquidating a number of insolvent enterprises and adroitly riding the wave of the so-called three-lows — low oil prices, low interest rates and a low (weak) Korean won. As a result, the Korean economy enjoyed its best days ever. His team’s focus on the economy and his trust in economic experts helped the government maintain sound fiscal health. Chun’s successful staging of the 1986 Asian Games and 1988 Seoul Olympics let the world know Korea had arrived.

In his 2017 memoir, Chun expressed a hope for the “replacement of the hatred and anger at me with tolerance and faith in truth.” Yet he did not accept responsibility for the Gwangju massacre nor ever apologize. He saw himself as a victim of “political tricks.” Chun has left behind many questions about himself and his very mixed record.


용서 받지 못하고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 11·12대 대통령이 어제 별세했다. 한 달 전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은 전 전 대통령의 별세로 ‘군인 대통령’의 기억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대개 시간이 흐르면 공과를 논할 객관적 거리가 생겨난다. 고인은 그러나 여전히 논쟁적 인물로 남아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례적인 가족장, 조문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 자체가 깊디깊은 단층을 드러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년 철권통치가 급작스레 막을 내리면서 만들어진 권력의 진공 공간을 고인이 12·12 군사쿠데타란 완력을 통해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고 ‘체육관 선거’란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란 명확한 한계 때문이다. 바로 정통성 문제다.

특히 5·18 책임 문제는 고인이 숨을 거둘 때까지 따라다녔다. 몇 차례 단죄도 받았다. 자신이 후계자로 지명한 노 전 대통령에 의해 강원도 백담사로 내려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해야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 때엔 반란수괴죄 및 살인·뇌물수수죄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본질적으로 권위주의 통치자였다. 내내 민주화운동을 억압했고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이는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연세대생 이한열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거센 민주화운동을 불러왔다. “독재 타도”는 넥타이부대를 거리로 불러낸 함성이었다.

그러나 여느 제3세계 군 출신 통치자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스스로 단임을 결심했고 이행했다는 점에서다. 87년 민주화운동 때도 진압보단 타협(직선제 수용)을 택했다. “전두환·노태우에 의한 민주화 과정이란 게 세계적으로 보면 유일하게 성공하다시피 한, 군사정권의 자진 후퇴”(이홍구 전 국무총리)였다.

경제 분야에선 한국 경제에서 불가능한 꿈이었던 성장·물가·국제수지란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박정희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만성적 인플레이션을 퇴치했다. 그래서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에 올라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개방경제와 시장 중시 방향을 잡았고 예산 동결과 같은 파격적 조치로 재정 건전화를 이룩했다. 지금도 한국의 재정 상태가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 기틀이 됐다. “유능한 전문 인력을 발탁해 믿고 맡겼으며 본인 스스로 열심히 경제공부를 해나갔기에”(『대통령의 경제학』) 가능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유치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였다.

고인은 2017년 회고록에서 “나의 허물은 덮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 국민의 채찍도 피할 생각이 없다…나로 인해 생겨난 증오와 분노가 한때의 증오와 분노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관용과 진실에 대한 믿음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썼다. 그러나 5·18 등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도 그렇다고 사과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정치적 책략의 희생물’로 여겼다. 진정한 용서는 진정한 사과를 전제로 한다. 그가 제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고 떠났기에, 제대로 용서하기도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게 됐다. 그의 불행이자 우리의 불행이다. 전두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에겐 쉽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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