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A concise history of the bomb

Oct 28,2002

The first country that tried to fulfill the dream of nuclear weapons was Nazi Germany. The leader of the nuclear weapons project was 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 one of the most excellent physicists of the times. Mr. Heisenberg was awarded the Nobel Prize for Physics in 1932 for his theory of quantum mechanics. He was also famous for his uncertainty principle.

In his teens, Mr. Heisenberg was devoted to finding the origins of the German fatherland. He would hike through waste lands for weeks in his search. During such hiking, he would discuss the future of Germany with his companions.

In September 1939, when Nazi Germany launched its nuclear weapons development program, Mr. Heisenberg applied for the research team. The research team progressed smoothly on the bomb's development. But the team soon ran into a problem. They needed heavy water to reduce the speed of neutrons, which were produced through the nuclear fission of Uranium 235. Mr. Heisenberg decided to get supplies from a heavy water plant in Norway, which was under the influence of Nazi Germany.

When British leaders obtained that information, they sent 30 commandos to Norway to destroy the heavy-water plant. But they were wiped out by the German military. Britain sent a second special attack unit to Norway in February, 1943, which sabotaged the plant. Thanks to their success, the United States became the first country to develop atomic bombs.

During the period leading up to the Second World War, Japan's army and navy also began to develop atomic bombs. But the dropping of the atomic bomb on Hiroshima crushed Japan's ambitions.

Syngman Rhee, the first president of South Korea, also was interested in the development of atomic bombs in 1951. But he allegedly was duped by a Japanese scientist who said that he had participated in Japan's atomic bomb project. But later it was realized he was a mere battery technician and he was deported from Korea.

In the 1970s, Park Chung Hee, the president of South Korea and Kim Il Sung, the leader of North Korea, competed in developing nuclear weapons. The dream of nuclear weapons in South Korea ended the moment Mr. Park was assassinated. But the dream is still in progress in North Korea. Some South Korean politicians are neglecting the seriousness of the situation.



The writer is a deputy internation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Noh Jae-hyun







핵무기 꿈

'꿈★은 이루어진다'며 맨처음 팔을 걷어붙인 나라는 나치 독일이었다. 주역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역학 업적으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거물이다.

하이젠베르크는 10대 시절 '국토순례단'의 열성단원으로 활약했다. '조국의 뿌리'를 찾는다며 몇주씩 황무지를 걸어서 여행했고, 밤이면 또래들과 캠프파이어 주변에 모여 앉아 독일의 미래와 전설적인 게르만족 영웅들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일찌감치 골수 파시스트의 소질을 보인 셈이다.

1939년 9월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을 때 하이젠베르크도 연구팀에 자원했다. 원자폭탄 연구는 착착 진행됐다. 문제는 우라늄 235의 핵분열로 생긴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주는 감속재(減速材)인 중수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영향권 아래 있던 노르웨이의 베모르크 중수공장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정보를 입수한 영국은 특공대 30명을 태운 글라이더를 노르웨이에 보냈다. 이들은 독일군에 전멸당했다. 43년 2월 출발한 2차 특공대가 마침내 중수공장을 박살냈다. 덕분에 미국이 세계 최초로 원폭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도 육.해군을 중심으로 원폭 개발에 손을 뻗쳤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이 일본의 야심보다 조금 빨랐다.

51년엔 한국 대통령 이승만도 원폭에 흥미를 느꼈다. 패전 직전 원폭 개발에 종사했다는 일본인 오카다(岡田)에게 속아 넘어갔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카다는 진해 앞바다의 소모도에서 연구실과 묘령의 여인까지 제공받는 칙사 대접을 즐겼다고 한다. 물에서 분리한 수소를 탱크에 넣고 폭발시키는 '원폭 실험'으로 이승만의 입이 벌어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결국 한낱 배터리 기술자인 것이 들통나 추방당했다.

70년대에는 박정희와 김일성이 남과 북에서 다투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박정희가 시해당함으로써 남한의 핵무기 꿈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중의 고통을 도외시하고 핵무기 꿈을 꾸는 것까지는 북한의 자유일지 모른다. 그러나 꿈의 결과 또는 대가로 쏟아질 재앙은 이웃한 우리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의 몇몇은 북한 핵을 마치 남의 일 대하듯 말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by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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