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Korea’s pianist brothers

Oct 24,2005


Among living pianists, Maurizio Pollini receives the most money for a performance. For just one concert, he is guaranteed at least $100,000. He won the International Frederic Chopin Piano Competition in 1960 by unanimous agreement of the judges.

Arthur Rubinstein, who was one of the judges, applauded Pollini’s performance, saying that he doubted that there was a pianist with more mastery in their midst. The competition, which is held every 5 years, is the gateway to becoming a world famous pianist. This is because this competition is nothing like other music contests, which are full of factionalism and involve taking advantage of being on one’s home ground. If the level of the participants is below the judges’ expectations, no prize is awarded.

The common rule is to memorize the pieces and play without a score in order to concentrate on the sounds. But even the Chopin Competition went through some trouble in 1995. Back then, Japan was full of enthusiasm, as Rika Miyatani had placed fifth. However, when it was disclosed that she had practiced with the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the official accompaniment orchestra for the competition, she paid the price. Despite the incident, the compeititon was able to maintain its prestige by not awarding a prize for 10 years.

At this year’s competition, pianist brothers Lim Dong-min and Lim Dong-hyek were tied for the third place. There was no second place winner. It is a splendid achievement, a result of constant effort and passion.

The brothers said, “from now on, we will live as professional pianists rather than concentrating on music competitions.” Competitions are not everything in music.

In 1980, Ivo Pogorelich gained more attention than the winner, Dang Thaison from Vietnam. At that time, he was eliminated in the third round for interpreting Chopin’s music at his own will, but now his unique interpretations are highly praised.

Last Wednesday, during the final round of the competition, Lim Dong-hyek asked the conductor to stop the performance, saying “A note sounds odd.” It turned out that a piano tuning instrument was left inside the piano.

The competition fans who were focusing on the live performance through the Internet, not knowing whether it was night or morning, were astonished at his musical talent. He left a deeper impression than the first-place winner, Rafal Blechacz from Poland.

Let’s hope the brothers, with much more practice, both become world famous pianists.

The writer is an editorial writer of the JoongAng Ilbo.


by Lee Chul-ho

쇼팽 콩쿠르

현존 피아니스트 가운데 몸값으로만 따지면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단연 최고다. 한 번 연주에 10만 달러의 개런티가 보장된다. 그는 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우승한 인물이다. 루빈슈타인과 호르초프스키는 "심사위원인 우리들조차 과연 그만큼 연주할 수 있을까"라고 감탄했다. 1975년 우승자는 침머만이다. 2000년에 우승한 중국의 윤디 리가 그를 찾아가 제자 되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침머만은 "당신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정중하게 돌려보냈다.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쇼팽 콩쿠르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등용문이다. 텃세와 파벌로 얼룩진 다른 콩쿠르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수상자를 내지 않는다. 이 콩쿠르가 독보적인 위치를 지키며 세계 음악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리에 집중하도록 악보 없이 암보(暗譜)로 연주하는 게 불문율이다.

쇼팽 콩쿠르도 95년 몸살을 앓았다. 당시 일본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마야타니 리카가 5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리카가 사전에 공식 반주 오케스트라인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연습한 사실이 드러나 비싼 대가를 치렀다. 세계 음악계는 일본의 로비 파문에 경악했다. 다행히 이때도 10년째 우승자를 내지 않아 간신히 위신을 지킬 수 있었다.

올해 쇼팽 콩쿠르에서 임동민.동혁 형제가 2위 없는 공동 3위를 차지했다. 땀과 열정으로 묵묵히 걸어온 한국 음악계의 역사적 쾌거다. 두 형제는 "이제는 콩쿠르보다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겠다"고 밝혔다. 음악에서 콩쿠르는 전부가 아니다. 80년에는 우승자인 베트남의 당타이손보다 유고 출신의 이보 포고렐리치가 더 주목받았다. 그는 쇼팽의 곡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본선에서 탈락했지만 지금은 그 독특한 곡 해석 때문에 훨씬 높게 평가받는 피아니스트다.

19일 밤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임동혁씨는 "음이 이상하다"며 연주 중단을 요청했다. 조사 결과 음을 조율하는 기구가 피아노 안에 남아 있었다. 인터넷 생중계를 보던 전 세계의 '콩쿠르 폐인'들은 그의 음악적 자질에 혀를 내둘렀다. 우승한 폴란드의 라팔 블레하츠보다 훨씬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두 형제 모두 더욱 정진해 우리도 좀 싼(?) 값으로 세계 최고의 피아노 연주를 즐겼으면 한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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