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년 된 일본 여관에서 근대사를 체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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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년 된 일본 여관에서 근대사를 체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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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차(茶)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시즈오카현. 한국으로 치면 ‘녹차 수도’를 자임하는 전남 보성군과 닮은꼴이다. 2박3일의 여정 중 첫날 묵은 곳이 쵸세이칸(潮生館)이었다. 1889년 문을 열었으니 124년 된 여관이다. 소나무의 마디 없는 부분만 골라서 깐 1층 복도마루, 15미터 길이의 삼나무를 다듬어 얹은 대들보, 벽과 창의 섬세한 디자인 덕분에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큰 건물이라 한다.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오래된 건물은 곳곳에 역사의 이끼가 서리기 마련이다. 쵸세이칸도 그렇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장남 이건(李鍵·1909~1990)이 한때 이곳에 머물렀다. 고종의 장손자이자 영친왕의 조카인 이건은 일본 육군 장교로 근무하다 모국이 해방된 후 일본에 귀화(1955년)했다. 이후 모모야마 겐이치라는 일본인으로 문구점·팥죽장사 등을 하며 기구한 생을 마쳤다. 이누카이 쓰요시(1855~1932), 고토 신페이(1857~1929), 오자키 유키오(1858~1954) 등 근대 일본의 거물 정치인들도 쵸세이칸을 드나들었다. 저녁·아침식사를 한 2층 방에 ‘황원준원(皇源浚遠)’이라고 쓰인 편액(扁額)이 걸려 있어 자세히 보니 문민통제를 추구하다 국가주의자 군인들에게 암살당한 이누카이 전 총리의 글씨여서 새삼 놀랐다.
그러나 124년도 일본에선 그다지 긴 축에 속하지 않는다. 쵸세이칸 인근에 있다길래 술을 사러 들른 시다이즈미(志太泉) 양조장은 1882년에 창업했다. 131년 역사다. 쵸세이칸 주인은 3대째, 시다이즈미 양조장 사장은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창업한 지 100년 넘은 기업은 2만 2219개였다. 200년 넘은 기업이 1200여개, 500년 이상 된 곳도 39개나 됐다. 우리나라에서 100년 넘은 기업으로 두산그룹·동화약품·몽고식품 정도가 거론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전통과 근대·현대의 단절, 식민지·전란 등 곡절 많은 역사와 급격한 사회 변화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상속제도의 문제점도 단골로 지적된다. 그 외에 이어받기보다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왕성한 창업정신 때문이라면 참 좋겠는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으니 문제다. 게다가 불황 탓에 폐업이 속출해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지난달 사상 최저 수준(22.8%)으로 떨어진 판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년도부터 가업을 이으려는 중학생이 특성화고에 수월하게 입학하도록 ‘가업승계자 특별전형’을 실시한다니 일단 기대해본다. 혹시라도 악용될 소지는 없어야겠지만 말이다. 100년 기업도 1년, 5년, 10년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 아닌가.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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