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pporting actor can change the world (KOR)
Published: 17 Jun. 2024, 09:39
The author is a senior reporter on culture at the JoongAng Ilbo.
Everyone is the protagonist of own life. I recalled that obvious truth while visiting the special exhibition at the Korea University Museum. The retrospective exhibition of the late Lee Kyu-ho (1920-2013) — a painter devoted to drawing evening primroses — is being held by his family to mark the 10th anniversary of his passing.
It is rude to dismiss someone as “unknown” just because he is not famous. But Lee is an “ordinary” artist who is not mentioned in art textbooks, whose paintings are not actively traded on the auction market for large sums. I went to the exhibition because I wrote about him for the Heritage series in the JoongAng Plus. He was actually a supporting character in the article, and the protagonist was Kwon Jin-kyu (1922-73), the genius sculptor of a tragic fate.
Lee worked as a curator at the Korea University Museum from Aug. 31, 1962 to March 12, 1977, and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opening the contemporary art exhibition hall at the museum. When reviews of the contemporary artists were not sufficient, he actively linked the school with artistic circles and purchased many of its early works. He made the splendid collection including Park Su-keun (1914-1965), Lee Jung-seob (1916-1956), Kim Whan-ki (1913-1974), Jang Wook-jin (1917~1990) and Chun Kyung-ja (1924-2015) possible, surprising visitors to the university’s 50th-anniversary special exhibition. The article discussed how Kwon Jin-kyu’s notable works like “Madu,” “Self Portrait” and “Buddhist Nun” ended up in the university museum. In the articles, I compared Lee’ role to that of Theo Van Gogh, Vincent Van Gogh’s brother.
I was humbled while looking around the exhibition room. He started to draw paintings by focusing on the moon and evening primroses, transforming them from figurative to semi-figurative art and from earthy tones to vivid colors.
In the more than 90 works on display, Lee was neither Vincent nor Theo. He was not the curator who discovered Kwon Jin-kyu, but artist Lee Kyu-ho. I don’t have the talent to discuss the artistry and marketability of his works, but I could tell how sincere and honest his life had been.
The exhibition was made possible after the museum accepted the family’s wish to hold a retrospective show. His son said, “My father played a major role in keeping good works from disappearing and helping people enjoy at the time when Korea didn’t have many decent art museums.”
He said he arranged the exhibition with the hope that students would remember that education and culture can blossom thanks to someone’s dedication. Not being famous does not mean being nameless.
There are many “supporting actors” in society, playing nameless roles. The main actor can take the spotlight when supporting actors do well.
But I found out that when a supporting actor takes the lead, a completely new drama is possible.
어느 '무명' 화가의 고려대박물관 전시
강혜란 문화 선임기자
누구나 자기 인생에선 주인공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진리를 곱씹게 된 건 엊그제 고려대박물관 기획전시실을 둘러보면서다. 오는 30일까지 열리는 ‘달맞이꽃의 작가 이규호 화백 회고전’은 이규호(1920~2013) 씨의 유족이 그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마련한 전시다. 유명하지 않다고 해서 ‘무명’으로 치부하는 건 결례지만, 이씨가 우리 미술 교과서에 이름을 남기거나 억 소리 나는 경매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지 않는 ‘평범한’ 화가임엔 분명하다. 그런 전시에 굳이 발품을 판 건 더중앙플러스에 기자가 연재하는 ‘더 헤리티지’에서 그를 다룬 적 있어서다. 실은 기사에서 이 씨는 조연이었고 한국 조각계가 낳은 비운의 천재 권진규(1922~1973)가 주연이었다.
이 씨는 1962년 8월 31일부터 1977년 3월 12일까지 고려대박물관 학예직(서기)으로 근무하면서 고려대박물관의 현대미술전시실을 여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무르익지 않았을 무렵, 적극적으로 학교와 화단(畫壇)을 매개하면서 초기 수작들을 대거 박물관에 귀속시켰다. 지난해 현대미술전시실 개관 50주년 특별전 당시 관람객들을 놀라게 만든 박수근·이중섭·김환기·장욱진·천경자 등 호화 컬렉션이 그 덕에 가능했다. 기사에서 권진규의 대표작 ‘마두’ ‘자소상’ ‘비구니’가 고려대박물관에 모이기까지 사연을 전하면서, 이씨가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같은 존재라고 비유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말하자면 테오 반 고흐가 남긴 유작들을 보러 간 거였는데, 전시실을 둘러볼수록 겸허해졌다. 대략 1978년부터 달과 달맞이꽃을 소재로 파고들기 시작한 그의 화업은 구상에서 반구상으로, 향토색 서정에서 원색의 화려함으로 시대와 함께 변주했다. 약 90점에 이르는 작품 속 이 씨는 빈센트도 테오도 아니었고, 권진규를 발굴한 박물관 학예사도 아닌, 화가 이규호였다. 그의 작품에 예술성·상품성을 논할 재간은 기자에게 없지만, 그가 자신의 삶을 성실·우직하게 살았단 건 알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고려대에서 사후 회고전을 열어주고 싶다는 유족의 뜻을 박물관 측이 수용하면서 성사됐다. 지난해 50주년 특별전을 통해 이 씨의 공헌이 재조명된 측면도 크다. 이 씨의 아들 이종훈 씨는 기자에게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미술관(박물관)이 드물던 시절, 좋은 작품이 사라지지 않고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게 한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누군가의 헌신을 바탕이 돼 교육과 문화가 꽃피울 수 있다는 걸 학생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 고려대 전시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유명하지 않다고 해서 이름이 없는 게 아니듯, 이름 없는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사회 곳곳 '조연'들이 많다. 조연이 잘해야 주연이 산다. 그런데 조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니 아예 새로운 드라마가 가능하단 걸, 모처럼 되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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